First collection Fall/Winter 1987-1988
Ann demeulneesrer
{interview} 전경빈 X 한상혁 crossover interview
예전에는 나는 정보 하나를 위해 10년간을 고생 하였다. 그런데 요즘 블로그를 보면 센티멘탈한 친구들이 너무나 쉽게 그 정보를 습득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보고 있으면 너무 속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정말 좋구나, 세대가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에 경빈씨를 롤 모델로 삶아 그 느낌을 다르게 무브먼트 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또 경빈씨의 의견에 반기를 들며, 언쟁을 벌이려는 친구들도 생길 것이다. "찐짜"라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
- 나는 일단 너무 환영한다. 나와 비슷한 스타일이 나와서, 나의 매출이 깎여도 좋으니, 그런 부류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인터넷을 디자인에 있어서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고, 메시지 전달의 매개체가 될 수 있고, 구체화 시켜서 의상에 담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진다. 그러한 것들을 웹으로 전달하려면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 있게끔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옷에는 나의 의도와 신념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일일이 큐레이터를 쓸 수도 너 없는 노릇이니, 인터넷은 좋은 큐레이터가 되어 줄 것이다. 나의 의견을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계획한 시스템이 보다 넓고 길게 퍼져나가길 바란다.
너무 좋은 생각인 것 같다. 그런 생각들이 아마 한국이나 서울베이스를 하는
친구들에겐 큰 버팀목이자 롤 모델이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나의 가치관은 디자인을 하는 것인데, 내가 하는 그 행위 보다, 어느 것에 더 행복을 느낄 수 있겠는가에 의미를 두고 있는 편이다. 나는 내가 디자인 한 옷들을 누가 입고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거의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면서 보게 되었다. 그렇게 우연적으로 만나는 사람이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재즈밴드에게 옷을 만들어주고 협찬 해 줄 때도 행복하다. 결국 나는 나의 가치보다는 나 스스로가 느낄 수 있는 자아의 가치가 더 중요한 것이다. 어떤 음악을 하건, 어떤 패션을 하던, 어떤 영화를 찍던 중심만 있으면 될 것 같다. 일종에 전도의 현상이하고 생각하고 있다. 예저부터 음악은 언더그라운드가 있었는데, 패션은 없다의 개념이 아닌 다양성에 대한 부분이 다른 어떤 것 보다 존중받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패션의 과거사를 되짚어보면, 디자인적인 부분에 많이 치우쳤었던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패션의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색이 좋다고 그 색에만 집중하여 다른 것을 지배하게 하기 보다는 당시 사회의 상황이나 특별한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생겨나 마땅할 시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핏보우는 어찌됐건 홈페이지의 느낌을 봤을 때 세련됐고 모던하고
거기에 포장도 너무 잘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듯
- 버려야 할 것들 중 하나가 있다. 처음에 인터넷을 시작하여 거부 반응이 들었던 것이 나를 메이킹 하는 것이 었다. 포장술을 넘어선 위장술의 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거기다 인터넷은 지식들보다 이미지의 힘이 더 큰 것으로 충분히 느끼고 있었기에 내가 미술적인 것을 좋아하여 디자인과 전시회를 그런 식으로 치르고, 집에 돌아왔을 때, 후배에게 말 한적이 있다. "패션은 산업이지." 의상을 만들 때, 어떤 가치관이나 메시지를 형성할 때 버려야할 것들 중에 하나가 의상을 만들 때 어떤 가치권이나 메시지를 단순한 이미지로 수단을 삼아 표현하는 것이 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러한 것들에 대해 비판보다는 그들의 압축적 능력에 경외를 표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미적인 것을 닿는다기보다 예를 들어 지금의 대세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이지만, 물론 아무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자기가 추구하는 것이 있기 보다는 하나의 이미지에 자신을 가두려 하지 않으려는 모험적 경향도 있는 것 같다.
- 그게 다양성이라 생각한다. 디자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통상적인 느낌들은 "예뻐야 한다. 거기가 멋져야 하고 시본적으로 미적인 요소는 늘 배경으로 있어햐 한다."일 것이다. 그러나 개성적으로 뛰어나거나, 가능성이 있다거나 하는 등등의 서적에서 담고 있는 말을 전적으로 증명해 줄 만한 다양성이 반드시
{interview} chon kyungbin 6th 인터뷰
나의 엘도라도, 그 안에서 유영하다
전경빈 「핏보우」 대표
전경빈 「핏보우」 대표에게 온라인은 ‘엘도라도’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동서남북도 없으며 정해진 항로 없이 의지대로 항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위즈위드에서 최초로 남성 디자이너 브랜드로 입점해 두터운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핏보우」. “나는 패션디자이너가 아니라 ‘운동가’다”라고 외치며 온라인을 넘어 패션의 ‘자유 세계’를 구상하고 있는 전경빈 대표를 만났다. <편집자주>
투기장으로 변해버린 현재 온라인 시장의 비극으로부터 자신의 단단한 성벽을 쌓은 이는 얼마나 될까?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죽어서 방패에 실려오거나, 아니면 더욱 강해져서 돌아온다. 상처입고, 상처 때문에 죽거나, 상처 때문에 더 강해지거나.「핏보우」는 2004년 태어날 때부터 전쟁터에서 자랐다. 아직 살아있고 처음부터 튼튼하게 쌓아올린 성벽은 더욱 견고해졌다. 전경빈 「핏보우」 대표는 2004년 위즈위드에 ‘나는 디자이너 브랜드’라며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당시 온라인에서는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최초로 남성 디자이너 브랜드로 온라인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고 급변하는 시장 생리에 맞게 기술적, 예술적 변화를 숙명(?)으로 받아들인 그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시스템면에서도 유연한 대처를 하고 있다. “빠르고 유연한 시스템을 위해서는 ‘발주공장-「핏보우」-고객’에 이르는 일련의 단계를 자동화가 될 필요가 있어요. ERP를 비롯한 커스터마이징에 관련된 네트워크 시스템 등을 구축한 상태고 금일 모든 업무 사항이 시스템화 돼 있습니다.”
온라인은 나의 ‘엘도라도’다
전경빈 대표는 온라인 시장을 엘도라도라고 표현하고 있다. ‘황금의 도시’라는 뜻의 엘도라도는 그에게 어떤 곳일까? “제가 온라인을 엘도라도라고 표현한 이유는 세계적으로 무수히 많은 분야의 디자이너들과 아티스트들을 접촉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예요. 검색을 통할 수도 있고, 에이전시, 이메일, 팩스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비즈니스 외에도 작품과 각 예술가들의 세계로 통하는 길이죠.” 그 가 궁극적으로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은 ‘콜레보레이션’이다. 작품을 통해 소통하는 매개체인 콜레보레이션은 또 다른 세계로 향한 그의 작은 몸짓인 셈이다.
현재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자개’다.
“일본의 「크롬하츠」가 은을 활용해 다양한 작품 세계를 보였던 것처럼, 우리네 자개도 센스있게 활용한다면 충분히 호감가는 아이템으로 탄생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중 의류보다 액세서리나 구두, 가죽 제품 등에 자개를 이용해 보려고 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할 수 있다
「핏보우」에게 온라인은 젊은이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흔히들 ‘커뮤니티’로 활용하고 있는 공간에 「핏보우」는 메시지와 진정성을 담고 싶어한다. 그가 많은 이들에게 제시하는 메시지나 철학은 ‘핏보우리즘’이다. 그는 ‘핏보우리즘’은 바로 ‘진실’이라고 설명한다. “이 진실은 디자인에 적용돼죠. 디자인에 대한 명시를 확실히해 디자이너 인큐베이팅 및 연대체계를 구축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권세진 비단 부채’라는 식이죠.” 「핏보우」의 홈페이지에서는 전경빈 대표의 많은 글들과 생각을 담은 사진이 올라와 있고, 회원들의 긁적임 등을 통해 진정성이 확보돼 가고 있다.
나는 패션디자이너가 아니다!
전경빈 대표는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다. 패션과 관련된 모든 공부는 독학으로 익혔다. 그래서 그를 무시하는 시선도 있었고, 그것이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아니한다. “제가 마지막 목표 지점으로 삼은 것은 패션디자이너가 아닙니다. 패션디자이너로 남는다면 그것은 끝까지 저의 오점으로 남겠죠. 저는 ‘운동가’입니다. 메시지를 담아 전파하고 문화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으로 ‘멋’만 강조하는 것이 아닌 성숙한 패션 시장으로 성장을 위한 힘을 보태고 싶을 뿐이죠.” 이제 「핏보우」는 온라인의 경계를 넘어가고자 한다. 오프라인이라는 거대 유통 시장에 발을 들여 놓기 위한 움직임은 쉽지만은 않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대형 유통을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죠. 하지만 상황만 탓할게 아니예요. 방법은 있어요. 대기업 유통과 손잡고 다양한 브랜드들이 입점한 타운 형태의 공간이랄까?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이를 바탕으로 볼륨화시킬 계획이예요.” 온라인이라는 엘도라도를 거쳐 핏보우리즘을 담은 「핏보우」가 오프라인에서 어떤 ‘자유 세계’를 펼칠지 사뭇 기대된다.
「핏보우」는?
지난 2004년 위즈위드에 남성복 디자이너 브랜드로 시작했다. 현재 온라인 채널은 핏보우 오피셜 웹사이트 www.fitbow.com 6번가 www.6thave.co.kr 에서 진행하고 있다. 오프라인은 기존 매장을 임시로 닫고 이전 준비중이며 압구정에 새로운 매장을 곧 오픈한다. 향후엔 대기업 유통망을 통한 채널을 구상 중이며 볼륨화를 추진 중에 있다.「핏보우」란 이름의 뜻은 fit의 ‘음악 이야기하다’라는 의미와 bow라는 활이 합쳐져 ‘이야기를 화살에다 놓고 그것을 당겨서 활로 쏘자’라는 합성어다.
culture diffusion: hahm min jung
{interview} chon kyungbin 1st 인터뷰
날개를 달았다는 핏(fit)의 천재
무심하게 바라보지도, 방심하지도 못하는 나이다. 스물넷. 착 들어가 안기는 남성 재킷의 다다이즘이라는 뿌리를 키워냈고, 천편일률적 채널들이 그의 눈 안에서 방영된다. 혹시 들어보았을지 모르는 ‘핏보우(fitbow)전경빈’이라는 이 젊은 디자이너의 스토리 텔링을 지금부터 시작한다.
슈트뿐 아니다. 심지어 와이셔츠 한 장도 맞춰 입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들을 주변에서 많이 본다. 그동안 기성복에 딱 붙여 놓았던 한쪽 발마저 맞춤식 디자인의 패턴으로 들여놓은 셈이다. 또한 이들은 국내 남성복 전문 디자이너의 이름을 술술 외우며, 핏(fit)대해 논의하기도 하는데, 이 남자들의 수다에 언뜻 들은 이름이 핏보우라는 브랜드, 디자이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는 듯 보였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영 디자이너 자켓인데, 기성복인데도 맞춰 입은 듯한 디자인이 딱 마음에 든다는 의견이 남성편력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인터넷 항해는 이 디자이너 이름 석자 정도를 쉽게 제공했다. 그리고 그의 재킷을 입고 싶다는 네티즌들의 댓글이 병풍처럼 늘어진 싸이트를 몇 군데 발견할 수 있었다.
전경빈. 1982년생.패션을 배우기 위해 학교라는 막힌 장소보다 살아있는 세상이 더 필요했던 이례적인 시작. 전경빈은 여타의 예술 행위가 그렇듯 어떤 사조에서 어떤 영감을 끌어냈는지에 대한 명분의 탑을 쌓아내고 있었다. 그 어떤 패션디자이너들이 운운하는 스타일에 대한 코멘트는 전경빈에게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제 눈에는 보여요. 의상디자인에 나타나는 천편일률적인 모방들이. 유쾌하지 않았어요. 일단 이 상황들을 거부했고, 내 의견과 소견들을 솔직하게 인정했고, 그 다음으로 집단을 이끌어갈 방법을 찾았어요.”전경빈은 이렇게 말했다. 성남, 독서실 책상에 앉아 디자이너들이 일에 집중하고, 태백에서 왔다는 일등 해커가 코너에 앉아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있던 그의 스튜디오에서 “에픽 하이 아시죠. 힙합 듀오요. 에픽하이의 모태가 케이 라이더스(knight ryders)라는 그룹이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이 그룹에 합류해 공연도 했고, 앨범도 냈어요. 집안 사정으로 팀활동을 그만두었고 그때부터 전 계원예고 독서실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서양미술사부터 갖가지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인가, 오트 쿠튀르 화보집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옷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어떤 형태로든 전경빈은 세상과 대화를 시도하려 했던 거다. 가사를 쓰고 앨범을 만드는 일도 좋았지만, ‘좋아하는 것’은 모호한 형태 뿐이었고, 진짜 해내고 싶었던 것은 다다이즘처럼 확장된 채널의 소유였다. 혼자 패턴과 가봉, 컬러, 소재에 대한 공부에 몰입하고 있을 무렵, 진짜 옷을 만들어볼 기회가 찾아왔다. 아는 지인으로부터 결혼식에 입을 칵테일 드레스를 주문 받았던 것, 그때 우아한 실루엣의 드레스는 전경빈의 퍼스트라인 작품 1호였다고 볼 수 있다. 옷을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 돈이 필요했고, 그 칵테일 드레스를 눈여겨보았던 주변인들을 통해 여성라인을 몇 벌 더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닥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무언가를 만들어 봐야 했다. 한번은 맘에 드는 벨트를 찾을 수가 없어 비닐장판을 잘라 벨트 디자인을 해본 일도 있다. 인터넷에 내놓았더니 금새 품절 사태가 나고 말았다. 모든 일이 순순한 세상도 아니지만, 해보니 안 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퍼스트 라인의 대중화를 위해 기성복 라인, 핏보우를 론칭하며 본격적인 세상과의 교류의 날개를 달았다. 때로는 소리 없는 외침(silence movement)의 방편으로 의상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사상가로서의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고, ‘no copy, no fame, no money’를 외치며 그를 주목하는 이들을 위해 컬렉션 발표 때마다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설치미술의 다다이즘을 명백하게 이어가고 있는 권세진을 비롯해 언더그라운드 페인터 서영지 등 각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오리지널 팬시(unkown movement)라는 아트웍 그룹을 결성, 물질적이거나 환경적인 제약으로 재능을 자유롭게 펼치지 못하는 예술인들에게 채널을 제공하기도 한다. “예술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경빈은 자신의 이야기 서술 방식에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을 비롯해 시인, 천연 염색가, 해커, 연극인, 사진가, 음악 프로듀서 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을 참여시킨 가운데 미술계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핏보우는 2006년 상반기, 개명을 준비하고 있다. ‘오드로스 노스뜨로스(otros nosotros:다른사람들과 우리들)바이 전경빈’이라는 스페인어의 브랜드. 오드로스 노스뜨로스 . 어려운 말이지만, 늘 우리 곁에 있어왔던 단어들의 조합이다. 전경빈이라는 디자이너가 유연해 보이는 이유는 미시적이든 거시적이든, 어떤 형태의 명분과 이유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도전 정신이 빛나기 때문이다. 그는 해외 디자이너들의 스타일을 변형해 가위로 오리고, 이미지 맵을 만들어 의상의 통일성을 만들고 싶지 않다. 의상 디자이너를 꿈꾸며 커가는 아이들에게 자부심과 도덕적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한 대화를 의상으로 만들어 내고 싶다고 말한다. 스물넷. 결코, 못 본 척 지나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방관할 수 없는 나이다. 전경빈은 지금 스물넷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브랜드로 명품관에 옷을 팔고 대중과의 대화를 위해 늘 다른 것을 준비하는 ‘패션디자이너’ 다.
edited by helen park
"a genius for 'fit' with wings, otros nosotros by chon kyungbin"
interview 62~65p (4page)
J.J (grand hyatt v.i.p membership magazine)
Every designer grabs a pen!
모든디자이너들이여 팬을잡아라!
and write some conscious lyrics to tell the children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하기 위해 의식있는 말을 써 나가자.
-by Fake ID
전 경 빈
no copy, no fame, no ostentation
-fitbow